[읽는 것]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作.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
[0. 들어가면서]
[1. 책내용]
1.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저널리즘은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존재했다. 저널리즘은 시민 정신을 위해 존재했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했다. 저널리즘은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부의 선전 선동 때문에 억눌렸던 시민의 언어를 되찾아오기 위해 필요했다.
- 저널리즘은 뉴스가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에서 목적이 나온다.
- 저널리즘의 1차적인 목적은 시민들이 자유로울 수 있고, 그들이 자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 뉴스 매체는 현실에 뿌리를 둔 공통의 언어와 공통의 지식을 형성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 1971년 미국 대법원은 뉴욕 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들이라는 미국 정부의 비밀 문건을 보도할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정헌법 1조를 통해,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언론에게 우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보호장치를 제공했다." "언론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피지배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 제록스 파크의 전직 연구소장 존 실리 브라운은 "새로운 경제 상황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문화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갈수록 미쳐가는 세상에서 무언가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 미래학자인 폴 사포씨는 이러한 능력은 기자적인 탐구심과 판단력을 활용해 "불확실한 환경에서 명확한 결론을 찾는 힘"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의미부여자(sense maker)로서 새로운 기자의 첫 번째 임무는 오히려 어떠한 정보가 믿을 수 있는 가를 확인하고 그리고는 그 정보를 다시 정리해 시민들이 그들을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 윌터 리프먼은 <여론>에서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들은 외부세계를 간접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스스로 머릿속에 만드는 그림을 통해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시민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저당화하는 저널리즘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제 시민은 수용자로서 이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다.' '언론은 시민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만, 시민에게 직접 말을 걸지는 않는다.'
- 뉴욕타임스 시민 편집인인 바이런 컬레임은 "두 종류의 독자가 있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한 가지는 우리가 무엇을 쓰든 그 문제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 군이다.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기사를 읽는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비판적일 것이다. 다른 종류는 단지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시간이 부족하다. 이 사람들이 어려운 독자들이다. 이들은 기사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당겨오는가이다. 기자가 머릿속에서 해야 하는 게임은 그러면 어떻게 정확하고 무게 있게 기사를 써서, 특히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기사를써야 한다."
2. 진실 :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
- 정보가 진실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이다. 뉴스는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외부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중요한 요건은 그것이 사용가치가 있고 믿을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일 비가 올 것인가? 앞길의 교통이 혼잡한가? 우리 팀이 이겼나?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나? 진실성은 사실상 안정감(sense of security)을 만들어낸다. 안정감은 알아야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뉴스의 본질이다.
- 중세에 수도승들은 진실에 계층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고위 수준은 천국이 존재하는가처럼 우리에게 우주의 운명을 전해주는 메시지다. 다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도덕적 진실이다. 그 다음 수준은 교훈적 진실로 예화를 통해 거기 포함된 가치를 알려준다. 끝으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며 가장 덜 중요한 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literal truth)이다.
-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건 허구의 사실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사례는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위해서 제공됐기 때문이다."
- 1913년 독자들이 그들이 읽는 기사를 더 신뢰하도록 하기위해 퓰리쳐는 뉴욕 월드지에 정확성과 공정보도를 위한 부서를 만들었다.
- 허친스위원회(Hutchins Commission)는 "사실적으로는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는 기사"를 보도하는 위험에 대해 경고한 바가 있다. 그때에도, 그 위원회는 맥락을 제공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인종에 관한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소수인종에 대한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키는 기사들을 예시했었다. "이제 사실을 진실 되게 보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사실에 관한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과학에 대해 그것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것들이 덜 잘못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실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삶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다.
- 균형성 또한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한 기사를 양쪽에 공정하게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양측이 동등한 무게를 갖지 않는다면 진실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 행동이다. 지구 온논화는 사실인가 허구인가? 대다수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온난화가 실재하는 사실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언론은 논쟁하는 과학자들의 양쪽에 비슷한 무게를 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물며, 양쪽이 아니라 훨씬 다양한 측면을 갖는 사안을 다루게 되면, 기자는 그 가운데 누구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가? 균형성은, 균형이 잘못 되는 순간 왜곡이 돼버린다.
- "진실이 속옷을 입기도 전에, 거짓말은 지구의 저편까지 간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옳다면, 진화된 과학기술은 정보의 전달 과정만 빠르게 했을 뿐이다. 기술은 진실과 거짓을 똑같이 빠르게 전파한다.
-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거짓말은 지구의 절반을 날아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이 시대에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은 "어디에 좋은 정보가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답을 제시하는 일이다.
3.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 펜실베이나대학의 조셉 카펠라와 캐서린 홀 제미슨 교수는 "냉소주의의 나선:언론과 공공재"이라는 책에서 문제의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기자들이 점진적으로 공직자의 행동보다 그들의 동기에 더 집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공 생활에서 "무엇"에서부터 "왜"로 보도 대상을 바꾸면서, 기자들은 공적 생활을 내면화 시켰다. 이러한 행동은 또 정치인들의 영혼과 자아에 주목하게 해서, 실제로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정책의 결과에 대해서는 덜 주목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 샌퍼드 번스타인씨에 따르면 1980년부터 1991년 사이 대도시 신문의 광고 총량은 8%가 줄었다. 1991년만 해도, 신문 업계는 4.9%의 소매점 광고를 잃었는데, 이는 한해 감소량으로는 가장 큰 수치였다. 텔레비전 시장도 상황이 비슷했다. 거기서는 시청자들이 유사 프로그램이나 유선방송의 재방송과 인터넷 등으로 떨어져 나갔다. 저널리즘 사업이 점차 힘들어지면서, 경영자들은 그들의 직무 처리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신문에서 이는 원가절감을 말한다. 품질강화를 위한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2년에서 1997년 사이 소규모 신문들은 뉴스 부문 예산을 11%, 좀 더 큰 회사들은 14% 정도 줄였다. 대신에 마케틴 비용은 더 투자됐다.
- 맨해튼 머큐리 지의 에드워드 시튼 편집장은 자신이 회장이던 1999년 ASNE총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신문이 독자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우리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편집자로서 우리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들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행위 기준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기자들과 시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무엇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해왔던 것 보다 훨씬 많이, 더 잘해야 한다. 우리의 강조점은 시민을 위한 봉사에 주어져야 한다. 절대로 경영 수지나 기술적 요인어어서는 안 된다."
4. 사실확인의 저널리즘
- 투키디데스가 기원전 5세기에 초안한 내용이다. 이 글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서문에 포함돼있다. "사건들의 사실에 관한 기록에 대해서...나는 절대로 처음 든는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또 내 자신의 일반적인 인상이 방향을 정하도록 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직접 목격한 사건은 기록했다. 간접적으로 목격자로부터 들은 얘기들은 최대한 철저한 확인을 거쳐 기록에 포함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목격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른 진술을 내놨다. 이들은 어느 한쪽이나 그 상대편을 편들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완전한 기억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
- 이 새로운 현실은 "우리 미디어 문화"가 만들어낸 개념과 충돌했다. 우리 미디어 문화는 시민들은 자유롭게 서로 소통할 수 있어서 진정한 진실과 더 정확한 정보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훨씬 쉽게 소통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사실확인의 저널리즘을 지탱하는가는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그 목표에 얼마나 사명감을 갖고 충실한가에 달려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공중을 설득하거나 여론 방향을 조직하려는 강력한 기관들이 개입 한다는 점이다.
- <우리 미디어>라는 책의 저자인 댄 길모어는 2005년 폭넓게 익혔던 "객관성의 종언"이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편견이, 그리고 배경이 있다. 또 다양한 갈등들을 매일 우리가 하는 일로 가져온다." 길모어씨는 기자들은 객관성이란 단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완전성, 정확성, 공정성, 투명성 등의 단어들로 대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리프먼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기자들이 "과학의 정신을 학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다양한 곳에서는 오직 한 가지 통일성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방법의 통일성이다. 그것은 철저히 훈련된 실험의 통일성이다." 리프먼이 한 이 말의 의미는 저널리즘은 "공통의 지적 방법과 공통의 타당한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시작을 위해서, 리프먼은 이제 막 시작된 저널리즘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저널리즘 교육은 "기존의 직업 구저에서 더 많은 보수를 위해 설계된 직업학교"개념이었다. 대신에 그는 이 교육 분야는 증거와 사실 확인에 대한 공부를 핵심 교과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리프먼은 "뉴스가 수학적 명제와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뉴스는 복잡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좋은 보도는 최고급 과학적 미덕의 실천을 필요로 한다. 원래 개념에서, 다시 말하자면, 기자는 객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객관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열쇠는 이 직업의 규율에 있다.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좌파건 우파건 상업적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편향성이 강한 저널리즘을 생산하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공정성을 주장하는 현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폭스 뉴스는 스스로를 "공정하고 균형 잡혀있다"고 판촉한다. 우파의 앤 콜터씨는 좌파의 거짓말을 폭로한다고 주장한다. 좌편향인 앨 프랑켄씨는 그의 책을 홍보할 때 "진실"을 강조한다. 이들은 19세기 허스트와 퓰리처 그리고 황색신문과 아주 닮았다. 선정적인 보도가 경쟁자보다 정확하다는 주장에서는 거의 똑같다.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는 극단적 매체들 까지도 스스로를 더 강하게 주장을 펴는 신문이라고는 선전하지 않는다. 반대로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 만약 기자들이 250여 년 동안 그들의 작업을 이끌어온 가치들을 옹호하는 주장을 펴고 싶으면, 혹은 투키디데스 이후 초기 기록자들의 본능을 되살리고 싶다면, 그들은 우선 사실을 정확하게 확보하는 원칙들과 방법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는 그 방법을 일반 공중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 "저널러즘과 과학은 같은 지적 뿌리로부터 왔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저널리즘 스쿨, 필 마이어 교수의 말이다. "이 뿌리는 17세기와 18세기의 계몽사상이다. 이는 수정헌법 1조가 만들어지도록 이끌어 냈던 같은 사상이다." 핵심 생각은, 다양한 관점이 있으면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또 "과학적 방법으로 연결됐다. 나는 이 저널리즘과 과학의 연결이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까지 최대한 복원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방법의 객관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것이 과학적 방법의 실체다. 우리의 인간적 특성, 주관적 충동은 객관적 도구에 의해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도록 제어돼야 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정성과 균형성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고차원의 원칙이기 보다 그들은 사실상 기법도구으로써 기자들이 그들의 기사를 발전시키고 사실 확인을 하는 작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들은 절대로 그들 자체의 가치만을 위해 추구돼서는 안 되고, 또한 저널리즘의 목표나 목적으로 받들어져서도 안 된다. 그들의 가치는 우리를 좀더 완전히 확인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진실의 기록에 다가가도록 돕는데 있다.
- 균형성은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예로, 만약에 절대적인 다수의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혹은 어느 한 진료법이 명백히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면, 언론이 이러한 과학적 논쟁이 동등하게 나눠져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시민을 위해서나 진실을 위해서도 잘못하는 일이다. 불행하게도 너무 자주 저널리즘의 균형성은 이처럼 수학적 의미를 갖는 것처럼 잘못 이해된다. 이런 경우 훌륭한 기사는 양쪽으로부터 똑같은 숫자의 인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돼있다. 기자들이 아는 것처럼한 기사에는 두 쪽 이상의 입장이 개입돼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 그들은 동등하게 균형 맞추는 일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일이 아니다. 공정성 또한 그것이 자체가 목표인 양 생각되면 오해가 될 수 있다. 공정성은 기자가 사실과 시민의 사실에 대한 이해에 대해 공정하다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그것은 "나는 나의 취재원들에 공정한가? 그래서 아무도 불행하지 않는가?"하는 공정성을 뜻하면 절대로 안 된다. 또한 그것이 기자가 " 내 기사는 공정해 보이는가?"라고 묻는 것이면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은 주관적 판단들이어서 기자가 그의 작업에 대한 사실 확인을 더 하려는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다. 공정성은, 다른 말로 하면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이다.
- 2002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방대한 각주를 사용했다. 혼두라스의 10대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를 보도한 6부작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이 기사는 "엘리케의 여행"이란 제목으로 실렸는데, 각주를 통해 인용과 특별한 장면 등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처리했다. 700 단어가 넘게 사용된 각주는 기사의 가독성을 높이고, 독자에게는 세밀한 취재과정을 충분히 알게 해줬다.
- 저널리즘에서는 오직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됐는가를 설명해주는 방법만이 혹시 관심 있는 수용자가 똑같은 취재를 할 의사가 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하게 된다. 이것이 과학과 저널리즘 모두에서 말하는 방법의 객관성을 뜻한다.
- 취재원을 오도하는 특별한 범주의 행동이 있다. 이러한 행동은 신분 위장이라고 말한다. 이 일은 기자가 다른 사람을 가장해 취재원을 오도해서 기사를 취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잠복 취재는 새로운 기법이 아니다. 20 세기 초, 넬리 블라이 같은 추문 폭로자들은 때로 정신병환자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으로 위장해 정신병자들에 대한 학대 실태를 폭로했다. 그 때 이들은 위장 취재 기법을 사용했다. 오늘날은 텔레비전이 자주 위장취재 기법과 소형 몰래 카메라를 사용해 비리를 폭로하곤 한다.
- 속임수를 피하고 취재원과 수용자에게 투명하라는 규칙은 1) 정보는 속임수를 정당화할 만큼 공공의 이익에 충분히 중요한 내용이어야 한다. 2) 다른 방법이 있다면 기자는 절대 신분 위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3) 기자는 취재원을 오도해 정보를 얻을 때마다, 그 사실을 수용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왜 그 기사에 속임수가 정당화되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 방법이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 뉴욕타임스의 워싱턴 지국장이던 마이클 오레스크스 기자는 진실을 추구하는 규율 가운데 대단히 간단하지만 강력한 생각을 제시했다. "너의 일을 스스로 하라."
- 오레스크스 기자는 결단코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사를 제대로 전달한 사람들은 모두 제 발로 뛴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취재원사용의 기본적 기준을 따랐고 그들의 정보를 다수의 취재원으로부터 확인했다. 밖에 무엇이 있는지를 걱정하는 기자들과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고 남들에게 질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을 망쳤다."
-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일은 항상 기자들에게 회의적인 마음을 갖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경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실을 확인하라." 만약 정보의 취재원이 충분하게 설명된다면, 수용자는 스스로 그 정보가 신뢰할 만한지를 결정할 수 있다.
- 최근 들어 뉴스의 출구가 크게 늘고 취재원들은 언론을 조작하는 기술이 정교해져서, 익명성은 기자가 망설이는 내부 고발자를 설득해 중요한 정보를 캐낼 때 사용하던 도구에서 이제는 언론을 잘 다루는 취재원이 말도 하기 전부터 기자들에게 강요하는 조건으로 변했다.
5. 정파로부터의 독립
- 오늘에 와서는 기자와 편집 책임자들은 정치적 쟁점에 대한 공중의 집회 같은 정치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돼있다. 예를 들면, 1989년 뉴욕타임스 신문의 대법원 출입기자 린다 그린하우스는 낙태 권리를 지지하는 시위인 '선택의 자유'라는 모임에 참여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참여를 '익명의 운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애써 강조했다. "나는 그저 청바지와 오리털 재킷을 입은 한 명의 여자였다." 그녀가 나중에 한 말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그녀의 행진이 그녀가 하는 보도의 인상을 위허마게 한다고 말하며 그녀를 징계했다.
- 공공저널리즘이라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주장은 저널리즘은 그저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해결책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의 제안자들은 이러한 접근은, 자세히 검토해보면, 언론의 독립이라는 원칙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이 운동이 기자를 특정한 입장의 옹호자로 보이도록 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프로젝트의 특정한 결과와 일의 목표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차이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일을 실천하는가에서 나게 되었다.
- 텔렌 편집인은 기자의 역할을 '의무감 있는 관찰자'라고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이 말은 기자는 공동체로부터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자들은 동료 시민들의 필요로부터는 '독립'해야 한다. 만약 그 도시에 해결이 필요한 주요 쟁점이 있으면 그리고 지역 기관들이 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 "우리는 관찰자 입장에서 장기간에 걸쳐 이 과정을 보도할 의무가 있다." 그 문제를 이따금씩 다룬다면 그는 무책임한 일이다. 또 지루하다고 무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쟁점이 해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기자가 그런 역할을 하는 방법은 책임 있는 기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 다른 기자들도 스스로 지적인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시험 방법을 개발했다. 전에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지와 워싱턴 포스트 지에서 정치담당 수석기자로 일했던 폴 테일러씨는 사전/사후 방법을 사용했다. 많은 취재가 필요한 기사를 배정받으면, 테일러씨는 맨 처음 리드를 작성한다. 이때는 아무런 취재가 시작도 안 된 상태다. 그리고는 취재가 다 끝나고 쓴 리드와 이 첫 리드를 비교하곤 했다. 만약 두 리드가 너무 비슷하면, 그는 자신이 알게 된 것이 너무 적다. 취재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단순히 자신이 갖고 있던 선입견을 써내려 간 것은 아닌가 하는 방식으로 생각한다.
6.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라
- 19세기 말 시카고에서 기자이자 유머 작가로 활동한 핀리 피터 던씨는 감시견 원칙을 '어려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편안한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 감시견 역할의 목적을 권력의 관리와 행사를 투명하게 할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그 권력의 효과도 이해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점은 논리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어디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알야아하고, 어디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도 알아야 함을 뜻한다. 언론이 권력기관의 성공이나 실패를 제대로 보여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권력을 감시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끝없는 비판은 의미가 없다. 그러면 시민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토대를 잃게 된다.
- 원래적 의미의 탐사보도는 기자 스스로 그동안 공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발굴하고 자료를 가지고 입증하는 보도를 말한다. 이러한 탐사보도는 자주 보도 대상이 된 기관이나 행위에 대해 정부가 공시적으로 수사를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언론이 공중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고전적인 사례다. 이 보도는 경찰의 수사와 비슷한 전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발로 뛰기, 공공기록에 대한 조사, 제보자의 활용, 특별한 경우는 위장취재와 잠복감시 등의 기법이 사용된다.
- 두 번쨰는 해석적 탐사보도다. 이 방식은 첫째 방식과 같은 기획, 발굴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해석 수준의 차원이 다르다. 근본적 차이는 원래적 의미의 탐사보도가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취재해 공중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면, 해석적 탐사보도는 한 문제에 대한 면밀한 고려, 분석의 결과와 치열한 사실들의 추구를 결합해 정보의 수준을 더 새롭고 완전한 맥락까지를 포함하도록 해 공중들에게 한층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하는 접근법이다. 이 작업은 단순한 폭로보다는 훨씬 복잡한 쟁점을 다루고, 사실들의 복합적 관계를 취급한다. 이 보도는 새로운 정보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제시한다. 초기 사례의 하나는 1971년 뉴욕 타임스가 공개한 펜타곤 페이퍼 관련 기사다. 그 문서들은 미국 정부가 작성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여에 관한 비밀 조사 보고서였다. 닐 시한 기자는 열심히 추적해 이 보고서의 사본을 하나 확보했다. 그 뒤에는 뉴욕 타임스의 기자들과 편집 책임자 가운데 외교 정책과 베트남전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문서들을 해석하고 다시 정리해 국민을 속인 극적인 증거들을 찾아냈다. 이러한 종합력과 해석 과정이 없었으면 펜타곤 페이퍼들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 문서로 남았을 것이다.
- 세 번째 탐사보도의 범주는 진행되는 수사에 대한 보도다. 이 추세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인데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 경우 취재는 주로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준비 중인 수사 사건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의 제보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기자의 인지, 혹은 취재원의 정보 유출 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기사는 워싱턴에서 늘 보는 것들이다. 이 도시에서는 정부 기관들이 항상 언론을 통해 다른 기관에 말을 한다. 수사에 관한 보도는 수사관이 작업을 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
- 보도의 위험요인은 그 기사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담당 기자가 얼마나 엄격하게 검증하고 의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공중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주장이나 제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강력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수사에 관한 보도가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이러한 경우는 잘 인식하기 힘든 위험이 항상 내재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수사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 구석의 정보에 노출될 뿐이다.
- 뉴욕 타임스 신문은 자기 지면에 의회의 비밀 보고서를 통해서 알게 된 핵무기에 대한 첩보 사건을 썼다가 그 교훈을 얻었다. 뉴욕 타임스는 그 보고서에 포함돼 있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들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 보고서는 중국이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 웬호 리 박사로부터 핵탄두 제조 기술을 얻게 돼 미국의 핵무기 기술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뉴욕 타임스 신문은 이 기사에서 리 박사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국자들이 이 사건이 최근에 일어난 어느 사건보다도 큰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은 포함시켰다. 이 기사는 수사관들이 서둘러 리 박사를 기소하도록 유도했고, 그는 결국 1년을 감옥에 보냈다. 그에게 적용된 59개의 기소 내용 가운데, 리 박사는 한 개의 기소에만 유죄를 인정했다. 그것을 불법적으로 국가 안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한 죄였다. 그에게 1년의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는 상급재판에서 무죄로 판명되자 자신이 했던 재판 결과에 대해 깊이 사과했다. 뉴욕 타임스도 장문의 정정기사를 싣고, 의회보고서를 그대로 믿었던 잘못을 사과했다. 리 박사가 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 밥 우드워드 기자는 감시견의 원칙을 책임감 있게 지키기 위해 열린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보건국이 백신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기사 취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나다 보니 기사는 오히려 도시 전체의 관리 능력 부족에 대한 내용이 됐다. 이럴 수 있기 때문에 취재 기자는 최대한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시간대별 일지를 기록한다. 그리고 최대한 모든 사람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하려고 노력한다."
-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에 근무하던 탐사 기자인 수전 켈러씨는 자신이 취재하는 탐사 기자와 관련된 모든 내용에 대해 사전에 취재원들과 충분히 토론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그녀가 정직하다는 점을 알게 되고, 자신들이 어떠한 상황으로 진입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누구나 내가 쓰는 기사에 취재원으로 참여하게 되면 나는 사전에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얘기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실명으로 인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그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이라고 말한다. 설사 내가 그들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알게 되더라도, 나는 그들에 대해 확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단 당신이 나에게 이야기하기로 합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당신은 그 뒤로는 통제하지 못한다. 당신은 그렇지만 어느 정도까지 협조할지는 통제할 수 있다. 당신은 실명으로 인용되기 때문에 내가 알기를 원치 않는 내용이 있으면 거기 대해서는 나에게 말을 안 하면 된다.
취재원들에 대해 이 정도로 정직했던 켈러 기자는 대단한 기사들을 써낼 수 있었다. 한 기사는 불임 전문의 병원에서 몇몇 의사들이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환자들의 난자 가운데 남은 것들을 다른 환자들에게 팔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토파니 기자가 썼던 감옥에서의 강간 사건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켈러 기자의 기사도 의료 기록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실명 증언으로 철저하게 증거가 뒷받침됐었다. 토파니 기자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이 기사 또한 퓰리처상을 받았다.
7. 공공 포럼으로서의 저널리즘
- 1947년 허친스위원회는 이 사명을 저널리즘의 본질적 의무로 규정했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의무 바로 뒤를 따르는 두번째로 중요한 의무였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위대한 기관들은 공공의 토론을 위한 모두를 위한 전달매체를 자임해야 한다." 허친스위원회가 쓴 말이다.
-저널리즘은 반드시 공공의 비판과 타협을 위한 포럼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시대에도, 이 공공의 토론이 다른 모든 저널리즘 원칙과 똑같은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이 원칙들은 진실성, 사실과 사실 확인 등에서 시작한다. 사실을 존중하지 않으면 포럼은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편견과 추측에 묶여 있는 토론만이 기승을 부린다.
-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항은 이 포럼이 반드시 공동체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절대로 부유한 계층이나 인구통계적으로 매력적인 집단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미디어가 수행하는 공공 포럼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토론이 극단적인 주장들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는 시민을 돕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뉴스 매체는 다원적 사회를 반영하는 매우 다양한 의견들을 들려주지만, 그들은 도한 민주주의는 결국에는 타협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절대로 눈을 감으면 안 된다. 공공의 포럼은 폭넓은 합의의 영역을 포함해야 한다. 그곳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발견된다.
8. 기사의 흡인력과 독자 관련성
- 퓰리처상을 받은 볼티모어 선의 의학 담당 다이애나서그 기자는 달랐다. 그녀는 감동적이며, 지금껏 다뤄진 적이 없는 생생한 기사를 쓰기위해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서그 기자는 2년여 동안 계속 이 주제를 맴돌면서 다른 기자들이 흔히 그러듯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녀는 관련 문서를 확보하고 전문가들을 확인하고 결코 적지 않은 가족들을 인터뷰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가 처음에 쓰고 싶었던 기사는 미국의 아픈 아이들을 죽기조차 힘들다는 것이었다." 서그 기자의 말이다.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아이들이 불필요하게 고통 받고, 아이들을 겁먹게 하고, 곧 죽으리란 사실을 어느 정도는 느끼는데도, 끝까지 죽지 않을 것이란 얘기만 듣는다는 사실이었다. 고통이 이 기사의 핵심이었다. 부모와 의사는 희망과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아이들은 그 결과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 서그 기자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을 모았지만 전문가나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은 그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어린이 말기환자를 위한 통증 완화 치료'라는 의학 전문용어 뒤에 숨은 의미 이상의 어떤 것, 그 딜레마를 찾아내길 원했다. 그녀는 '통증 완화 치료'과정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마침내 서그 기자는 R.J 보이트라는 12살 소년을 발견했다. 그리곤 소년의 마지막 4주를 함께했다.
R.J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었다. 누구도 그 아픈 소년이 퉁퉁 부은 눈꺼풀을 바르르 떨며, 힘겹게 엄마에게 속삭이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사예요. 엄마. 천사들이 와요." 서그 기자는 "나는 이 기사가 다른 가족들의 정서적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썼다. "아마 엄마는 아이에게 두럽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죽어 가는 소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저는 더 이상 이런 치료들을 원치 않아요." 서그 기자가 원하는 기사를 쓰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기사를 위해 그녀는 진료기록과 R.J의 일기, 그의 가족과 친구들, 의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참고했다. 또 볼티모어 선지의 사진담당 모니카 로포세이 기자와 20일, 이 상을 R.J의 입원실에서 지내며 기사에 묘사된 그 소년의 죽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순간들을 옆에서 함께했다. 그 결과물인 4부작 시리즈 기사는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의료계 전문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기사는 R.J. 개인의 이야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큰 이슈를 균형에 맞춰 완벽하게 담아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단순히 좋은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기사로 쓴다. 하지만 암과 싸우는 한 아이가 겪는 일들은 암 진행상태가 어떻게 되는 지만을 보여 주기 위해 기사로 다루지 않는다. 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기사로 다룬다. 이러한 큰 문제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일부 기사 속에 닻을 내리고 있다." 서그 기자의 말이다. 서그 기자가 R.J.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한 이 일이 바로 저널리즘의 7번째 원칙으로 연결된다.
- 기사의 '흡인력'을 둘러싸고 제기돼온 이러한 "정보인가, 스토리텔링인가 혹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인가, 필요한 것이다" 하는 고전적인 논쟁은 왜곡됐다. 기자들은 이러한 논쟁은 저널리즘이 실제로 작용하는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또한 사람들이 뉴스를 대하는 방식과도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다 원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사람들은 신문의 스포츠 면도 읽고, 경제면도 읽는다. '뉴요커'를 읽고, 만화나 서평도 보며, 낱말 맞히기도 푼다. 뉴욕 타임스의해외 지국은 25개에 달하고, 워싱턴 지국의 직원은 80여 명이 넘으며, 시의회의 회의 관련 기사도 다루지만 동시에 카드놀이와 관련한 칼럼, 음식점 평가, 가정과 음식 관련 섹션도 풍부하다. 또 뉴욕 데일리 뉴스지는 스포츠 보도와 연예 관련 사진, 가십보도로도 유명하지만 정부 정책의 문제들과 실책들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취재해 보도하기도 한다.
- 한 마디로 저널리즘은 목적이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그 목적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자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첫 번째 도전에 직면한다. 두 번째 도전은 그 정보의의와 사람들의 삶과의 관련성을 흡인력 있게 표현해 내는 것이다. 기사의 '흡인력'은 사실 기자가 얼마나 시민들에게 헌신하느냐에 달렸다. 우리의 대학연구팀과 인터뷰했던 한 기자는 "무엇인가를 알아냈을지라도 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순간까지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그가 기자다"라고 말했다.
- 전통적인 기사 쓰기가 가진 공통적인 취약점은 1) 기사에 인물이 빠져 있다. 취재원이 약하거나 허구다 2) 시간적인 배경이 한정돼 있다. 모든 일들이 '어제' 또는 '오늘 저녁'에 일어났다고 쓰인다. 3) 다양한, 복수의 독자/시청자를 위한 정보가 아닌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4) 뉴스가 내부 관계자의 대화만 담고 있다. 5) 기사가 더욱 큰 의미나 주제를 조명하지 못한다. 6) 지역적인 사건을 세계적으로 확대하거나, 세계적인 문제를 지역적으로 적용시켜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7) 스토리텔링이 예측가능하고 정형화돼 있다. 8) 인터넷을 색다른 기술로 활용하지 않고 단순히 오래된 기사를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만 이용한다.
- 첫 번째로 뛰어난 스토리텔링이란 기자가 비디오 앞에 앉아 기사를 편집하고, 방송 뉴스 대본을 쓰고, 텅 빈 스크린을 서사체 이야기로 채워 가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기사는 취재하러 나가기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좋은 기사는 남과 다르게 취재하는 일, 남과 다른 취재원을 찾는 일 그리고 다른 질문을 제기하는 일 등을 포함한다.
- 기자들은 어떠한 기사든지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수용자가 그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끔 구성해야 한다. 1) 이 기사가 진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2) 이 기사의 주요 독자는 누구이며, 그들이 이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3) 누가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4) 이 기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말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간단해 보이는 이 질문들이 큰 차이를 만든다. 이러한 질문들은 그 기사와 관련된 이익집단이나 내부 관계자, 도는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른 사람들이 아닌 오직 시민을 위핸 취재와 기사를 만든다. 이 질문들은 또한 시민들이 진실로 듣고 싶어 하는 질문의 답을 들려주지 않는, 현재 언론사들이 주로 활용하는 오래된 기사 스크랩과는 다른 새로운 취재원과 정보들을 활용하게끔 돕는다.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기사를 씀으로써 기자는 독자를 한정짓는 결과를 낳던, 과거 기사의 일상적인 식상함에서 벗어나는 취재를 할 수 있다.
- "누가는 기사의 등장인물이 되고, 무엇은 기사의 구성이 된다. 어디는 현장이나 사건의 무대가 된다. 왜는 동기나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는 서사체 기사를 뜻한다." 혹은 이 모든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것이 기사 안의 육하원칙을 새롭게 다루는 방법이라고 클라크 씨는 말한다.
- 기자들은 종종 뉴스를 전하지만, 여전히 그 사건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됐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예를 들면 '모니카 르윈스키 씨는 애당초 어떻게 백악관에 들어갔을까?'와 같이 '그것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기자들의 방식이 바로 내러티브다.
- 서사체 기사의 가교를 만드는 5가지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등장인물과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 소개되는 설명 부분이 필요하다. 또 그 복잡함을 풀어가는 과정의 장애물들을 보여주는 전개 부분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해결될 때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깨닫고 문제의 해결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기사의 대단원은 산만해진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며 끝낼 수 있는 기회다.
- 퓰리처상 수상자인 자크 바나진스키씨는 한 주제에 대해 남과 다른 기사를 쓰려면 7가지 접근법과 8번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간단한 브레인스토밍 연습은 어떤 특정한 주제에 전부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를 보도하는 데 필요한 풍부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해 준다. 1) 인물 프로필 : 그 기사 뒤에 있는, 그 이슈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찾아라, 꼭 사람뿐 아니라 어떠한 장소나 사건, 건물에 대한 정보까지 모아라. 2) 해설성 기사 : 독자들에게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무엇인가가 어떻게 가능하는지를 보여 줘라. 3) 이슈와 트렌드 기사 : 기사를 쓰면서 그와 관련된 더욱 큰 그림은 없는지 자문하라. 트렌드가 꼭 문화나 생활양식에 연관된 것은 아니다. 범죄나 경제문제와 연관 지어라. 4) 탐사 기사 : 범죄를 샅샅이 뒤져라.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라. 권력관계를 분석하고,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자료로 활용하라. 5) 서사체 기사 : 등장인물의 개성을 드러내고 그 사건의 현장과 긴장감이 살아 있는 기사를 써라 6) 하루의 삶 묘사 기사 : 서사체 기사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순간에 초점을 맞춰라. 경찰과 동승기 혹은 뉴욕 시의 '뉴뮤지엄'의 방문 등이 그 예다. 7) 목소리들 혹은 관점 기사 : 사람들로 하여금 독특하게 이야기하도록 하라. 질의 응답, 원탁회의, 인용들로 구성 등 8) 시각적인 기사 : 어떤 기사는 사진, 그래픽, 일러스트와 같은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 뉴스를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1) 마음속의 그림 : 기사를 따분하지 않고 흥미롭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을 때 자신의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은유를 포함한 심상의 힘은 매우 크다. "누군가에게 '당신 뒤에 뱀이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직접 뱀을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포를 불러온다."
- 좋은 스토리텔링은 '의외성'에 있다. 의미 있는 방식으로 독자를 놀라게 해야지 단순히 충격을 주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최고의 드러내기는 이야기가 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뜻밖의 주제와 연결 되는 때라고 말한다.
9. 뉴스를 포괄적이면서도 비중에 맞게 만들어라
- 어떤 시점에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아니다.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첫 번째 규칙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반응도 설득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사건을 보다 넓고 깊은 맥락에서 살펴보기 위해 계속해서 정보를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는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그들이 목격한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대응했더라도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의주의, 직업정신, 지적인 독립성이 요구된다. 무엇인가를 뉴스로 만드는 데는 인간의 감정이 핵심적으로 작용한다. 만약에 없는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용한다면 당신은 지켜야 할 선을 넘게 된다.
- 위드 씨는 뉴스 조직은 보도를 통해 답을 낼 수 있는 저널리즘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무엇은 하는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라." 위드 씨의 말이다. "그들은 친구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들은 왜 지금 투잡족이 되었는가? 그들은 요즘 무엇을 먹는가? 건강보험, 휴가, 자녀교육에 대한 지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당신이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반응하도록 취재영역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10.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 기자는 사람들에게 지금이 위기상황인지 아닌지를 알려줘야 한다. 기자는 시민들이 서로 대화하도록 도와야 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며, 그들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해야 한다. 기자는 사람들이 '차이의 계곡'에 다리를 지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기자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듯이 자기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할 의무가 있다. 기자가 다른 사람을 취재할 때 적용하는 가치들을 기자의 삶과 보도에도 똑같이 적용할 의무를 말한다. 또 언론 산업 전체의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문화는 남을 배려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어떠한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 강력한 도덕성의 천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11. 시민의 권리와 책임
[2. 감상후기]
<저널리즘 기본 10원칙>
1)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2)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3)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4)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들로부터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5) 저널리즘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자로 봉사해야 한다.
6) 저널리즘은 반드시 공공의 비판과 타협을 위한 포럼을 제공해야 한다.
7) 저널리즘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들을 흥미롭게, 그들의 삶과 관련 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8) 저널리즘은 반드시 뉴스를 포괄적이면서도 비중에 맞게 보도해야 한다.
9)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실천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10) 시민들도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